그냥 그런 이야기2024. 2. 17. 13:57

한적한 골목 어귀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갔다.

 

 

네댓 테이블을 가진 카페에는 잔잔한 인디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커피와 음료 몇 종류와 베이커리까지 열 개 남짓한 단촐한 메뉴판이 눈에 띄었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다가가자, 

 

옅은 미소와 함께 주문을 받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벽면에 있는 책장을 살펴 봤다.

 

익숙한 제목의 베스트셀러, 예쁜 그림책 사이에서 얇은 시리즈 책들의 제목이 내 관심을 끌었다.

 

그 책들의 제목은 연도로 보이는 네 개의 숫자였다.

 

 

 

1996은 중산층에서 자란 청소년기 소년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동화되면서 결국은 자신의 좋은 환경으로 인해 그들 속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하는 좌절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2002는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입술에서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이별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2006은 한 개인이 이길 수 없는 사회 권력 앞에서 조금씩 양심이 무뎌지는 사회 초년생의 선과 악에 대한 정체성 혼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2013은 당연한 듯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동해온 교육과 취업 전선의 끝에서 뒤늦게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시 되묻고 삶을 도전하는 모험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2016은 더 가진 누군가가 덜 가진 누군가를 돕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비밀이라고 믿는 사람의 이야기를,

 

2022는 오래된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내 삶이 보잘 것 없을 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라는,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꾸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이어진 모든 숫자의 책은 카페 책장의 한쪽 구석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 책에는 평범한 삶이지만, 고민과 도전이 있기에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고

 

그 삶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꿈에 그리던 카페였다.

'그냥 그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록의 소실  (0) 2024.02.17
오병이어  (0) 2020.10.04
창의의 조건  (0) 2020.10.02
족적  (0) 2020.09.04
진호  (0) 2020.07.09
Posted by Joojaps